다음 페이지는 일본이 1904-1905년 러일전쟁 을 전후해서 한국영토를 점령하는 자세한 내용을 설명한다. 이 정보의 원천은 일본 아시아 역사 디지털기록관이다.(JACAR). 이들 문서와 지도를 통해서 독자들은 일본이 “어떻게”, “왜” 독도를 편입시키게 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독도의 편입은 군사적 우위로 점령한 다른 아시아 지역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페이지는 문서가 더 많이 발견되기 때문에 분량이 많아지고 규모가 커져갈 것이다.
1904년 2월 23일 강제적인 한일의정서의 조인 결과, 일본군은 러일전쟁 동안 한국의 전역에 군대를 주둔시키게 된다. 한국이 항구, 섬,그리고 해안지역은 일본군 전함의 본거지가 되었고, 가장 중요한 전라도 진해항은 도고제독 함대의 근거지가 되었다. .이 시리즈에서 우리는 현재 북한 땅인 원산을 얼마나 조사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이미지는 일본 역사기록센터의 자료인데, 러일전쟁 동안 일본군의 한국영토에 주둔한 일본군이 얼마나 불법적으로 라디오 송신소를 설치했는지를 실제 문서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이미 그들이 설치한 시설들과 함께 그들이 건설하는 적절한 방법을 설명한다.
위에는 일본이 한국본토와 독도에 군사시설을 어디에 어떻게 측량하고 건설했는지를 자세히 보여준 일본 국립기록문서 보관소의 파일이다. .
한국에 군사시설을 한 위치를 보여주는 일본지도 원본.
오른쪽 지도는 1905년 일보해군지도로써 일본본토와 한국 바다 사이의 해저 전신망의 상세한 지도이다. 지그재그로 그어진 해안지대 연결망은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사세보항과 연락을 주고 받는 해저 케이블 선을 나타낸다.
자세한 그림을 보려면 두번 클릭하시오. 붉은 영문글자는 참고로 추가한 것이다.
몇 몇 장에서 빈 이미지는 파일 이미지의 자료 크기를 조절하기 위하여 가공한 것이다. 이 파일들은 모두 1904~1905년 메이지 37-38년 사이 일본해군의 기록물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독도가 청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일본의 전체 해군가 육군의 지역 방어계획에 편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계획은 나중에 변경되어 독도를 거쳐가는 케이블은 일본본토 마츠에를 지나가는 대신에 오키 섬을 지나게 된다. (이 지도를 보시오).
우리가 1904~05년 일본해군 기록물 보관소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일본과 한국 연안지역에 관해서, 확실한 방식을 볼 수 있다. 일본해군 순양함들은 군사전략상 중요한 섬으로 모두 보내졌다.
이 섬들과 연안지역 지형학적인 측량은 망루, 통신통신소, 무선통신소를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은 민간인들이 측량 또는 시설을 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 태평양 그리고 발틱함대를 몰살시킨 한 전함들이 이 일을 수행하였다. 지도들은 일본이 군사적인 이유로 점령한 작은 섬들을 표시한다. 더 높은 해상도를 보시려면 클릭하시오.
한국 울릉도의 일본 군사지도들
왼쪽은 한국 동쪽 130km 울릉도에 대한 일본해군 측량 지도. 한국의 울릉도는 일본해군에게 대단한 전략적 자산이었다. 성인봉 산은 하늘 높이 솟아있고, 날씨 맑은 날, 한국본토에서 보이는 섬으로 360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울릉도는 대마도 그리고 조선 해협을 향하는 Vladivostok선박의 중요한 항로에 있다.
그 결과, 울릉도는 일본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시설인 망루가 설치되었고, 선박계류장도 건설되었다. 일본은 러일전쟁 1904년~1905년 당시 헌병을 울릉도에 주둔시켰으나, 1900년초, 이미 벌써 거기에는 일본인 불법 거주자를 통제하기 위한 경찰이 주둔하고 있었다.
울릉도의 통신전선은 원래 일본 전함들이 정박하고 있는 죽변 항에 설치될 예정이었다. 나중에 이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해군 통신선은 독도~일본 마츠에(松江)로 연장되기로 된다. 울릉도 그리고 독도의 군사적 중요성은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일본이 일찍 알고 있었다. (링크)
울릉도의 북동쪽 석포리에 있는 일본 망루 군사지도들.
오른쪽에는 울릉도가 또 다른 일본 군사지도에 Matsushima(松島)로 표시되었다. 이 그림에서 보는 것은 울릉도의 북동쪽 석포리 망루, 그리고 남동쪽 사동과 도동 사이에 있는 망향산(望鄕峰) 망루 위치이다. 지도는 독도와 일본 마츠에를 연결하는 해저 통신선 경로이다
아래 오른쪽 지도에는 간단한 범례 설명 기호를 보여 준다. 지그재그 선은 독도로 연결된 해저 통신선들을 나타낸다. 지도는 울릉도의 동쪽 해변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산들의 산등성이의 윤곽선을 보여준다. 독도는 오래전부터 망향산에서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리고 최근에 거기에서 찍은 독도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더 큰 모습을 보려면 클릭하시오).
아래 이 내용은 한국의 울릉도에 설치된 일본해군 망루 원본지도 이미지들이다. 그것은 죽도(竹島) 섬 근처 관음봉을 바라보는 석포리 산에 위치해있다. 왼쪽 지도는 망루(望樓) 그리고 지도들을 보여준다. 위, 둥근선은 독도의 가시성 범위를 나타낸 것이다. 지도 in 중앙 아래 보이는 지도는 망루, 군사적 목적의 무선송수신소이다. 석포리 일본해군 망루는 독도의 망루와 거의 같은 시기에 설치되었다.
위 왼쪽: 이 원본지도는 울릉도의 북동쪽 산줄기 석포리(石浦里)에 위치한 일본군의 망루를 보여준다. 위 중앙: 석포리의 인접한 망루는 일본의 병사들을 위한 막사, 송수신소이다. 위 오른쪽: 석포리에서 본 위치는 동해의 멋진 광경을 보여 준다.(이미지를 두 번 클릭하시오)
울릉도의 외로운 언덕 위에 몇 몇 관광객 또는 지방민들이 찾아오고 있지만, 남은 일본군들이 아직 울릉도에 보인다. 벽돌로 기초를 한 막사와 표시는 울릉도의 석포리에서 아직 가시적인 중요성이 남아 있음을 설명한다.
위 왼쪽: 일본 망루(땅의 왼쪽)와 라디오 송신소 시설이 흔적들은 이직도 울릉도 석포리에 남아 있다. 위 오른쪽: 유적의 표시 설명은 주변이 역사적 상황을 설명한다.(이미지를 두번 클릭하시오)
죽변을 거쳐 울릉도, 독도 그리고 최종적으로 오키 섬을 연결하여 일본은 동해를 가로지르는 가시성의 띠를 완성하게 된다. 이런 감시 수역들은 쌍안경으로 매우 멀리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울릉도의 망루에서 독도는 90km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독도의 모습은 매우 쉽게 볼 수 있었다. 이것은 1904년 9월의 일본 전함 니타카(新高) 호의 항해일지에서도 기록되었다. 링크를 보시오.
한국 동해안 항의 일본 군사지도들
한국의 동해 죽변항구는 일본해군에게 중요한 항구였다. 왜냐하면 죽변은 1904년 여름 일본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울산, 부산, 죽변 그리고 원산은 모두 일본군이 점령하였고, 망루와 통신소를 건설하였다. 죽변은 그런 중심지였고, 원래 울릉도 망루의 통신선은 사세보에 있는 일본해군 기지로 연결되었다.
오른쪽 지도는 죽변의 일본 군사지도 원본이다. 이것은 독자들의 이해를 위하여 몇 개를 영어로 표시한 것이다. 지도의 아래 오른쪽은 망루와 관련된 통신소의 위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들 지도들과 함께 윤곽선은 새로이 편입한 무선 라디오 장비의 송수신에 가장 유리한 지형도를 나타내고 있다. 무선통신기관은 러일전쟁 중에 필요불가결한 것이었고, 특히 대마도 전투에서는 위 지도가 그러진 몇 달 후에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한국 동해안 울산항구를 나타낸 일본의 군사지도들
두 지도들 아래 이 내용은 한국의 동해안 울산항이다. 다른 지도들처럼 이 지도들은 참고로 웹마스터가 영어로 붉은 색으로 표시하였다. 일본 지도는 울산을 모두 조감도와 해수면에서 그렸다. 위 지도는 망루와 무선통신소의 적합한 위치를 윤곽선으로 그렸다. 아래 보이는 것은 울산항의 전경이다. 울산의 전략 중요성은 1904년 8월 14일 울산 전투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이것은 러시아 해군함이 일본의 수송선을 공격 한 후에 나타난다. 왼쪽은 부산의 망루 그리고 통신소, 그리고 북쪽은 죽변의 군사 기지. 울산의 망루 위치가 이 지도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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