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선언은 미국, 영국과 중국 사이의 공동담화문으로 작성되고 일본에 관한 구속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이 1945년 7월 26일(소비에트 러시아는 그것을 8월 8일 승인하였다.) 포츠담 선언을 수용함에 따라, 카이로 선언 8조는 일본을 제약하는 국제적 수단이 되었다.
북 아프리카
1943년 11월 27일,
[미국] 국무성, 국무성 고시, No.232, p.393. 일본의 대외관계-기본 문서들 Vol.1, pp.55-56.
대통령 루즈벨트, 장개석(Chiang Kai-shek) 총통과 처칠(Churchill) 수상은 관련된 군대와 외교 자문관들과 함께, 북 아프리카에서 회담을 완료하였다.
다음과 같은 공동성명이 작성된다:
(1절)” 몇 몇 군대들은 장차 일본에 대하여 군사작전을 펼 것을 합의한다. 3개 연합국 야만적인 적국에 대하여 바다, 육지, 그리고 하늘에서 준엄한 압박을 할 것을 결의한다. 이 압력은 이미 시작되었다.
(2절)” 3개 연합국은 일본의 침략을 제한하고 처벌하기 위하여 이 전쟁을 치르기로 하였다. 우리들은 스스로 이득을 바라지 않고 영토확장을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들의 목적은 1914년 일차세계대전이 시작된 이후 일본이 점령한 또는 탈취한 태평양지역에서의 모든 섬들을 해방시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중국에서 빼앗아 간 지역들, 예를 들면 만주, 대만, 팽호열도(Pescadores) 는 모두 중국으로 귀속된다.(1) 일본은 또한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탈취한 모든 영토에서 추방할 것(2). 앞에서 언급한 3개 강대국들은, 한국인들의 노예상태를 생각하여 한국은 적절한 과정을 거쳐 해방되고 독립될 것이라고 결정한다.
(3절)” 이들 3개국 연합국들은 전쟁의 목적과 함께 유엔은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얻어내기 위하여 진지하게 필요한 작전을 계속할 것이다. “
카이로 선언 조항 8의 규정: “..카이로 선언의 조건은 시행될 것이며, 일본의 주권은 혼슈, 혹카이도, 큐슈, 시코쿠과 기타 우리가 결정하는 작은 섬들로 한정될 것이다…” 선언 자체는 또한 4 개 강대국들의 공동담화문이며,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 전인 8월 14일까지, 그리고 그해 9월 2일 항복문서에 조인하기 전까지는 일본을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일본은 카이로과 포츠담 선언에 의하여 책임의 의무를 진다.
리적 연계에서 자연히 일본은 이 지역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포츠담 선언
1945년 7월 26일,
(1) “우리들 합중국 대통령, 중화민국 정부 주석 및 대영국 수상은 우리들의 수억 국민을 대표하여 협의한 결과, 일본 국에 대하여 이번 전쟁의 종결을 위한 기회를 주는 데에 의견이 일치되었다.
(2) 미·영·중국의 거대한 육해공군은 서방에서 본국 육, 공군에 의한 수억의 증강을 받고, 일본에 대하여 최후의 타격을 가할 태세를 갖추었다. 이 군사력은 일본이 저항을 중지할 때까지 일본에 대한 전쟁을 수행하려고 연합국의 결의로써 지지 고무되어 있는 것이다.
(3) 세계 자유 인민의 궐기한 힘에 대한 독일의 무익 무의미한 저항의 결과는, 일본 국민에 대한 선례를 매우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 대하여 집결되고 있는 힘은, 일찍이 나치스의 저항에 이를 발휘하였을 때 독일 인민의 토지, 산업, 생활양식을 황폐에 귀하지 않을 수 없게 했던 그 역량에 비하여도, 더한층 강력한 불가측의 것이 되어 있다. 우리들의 결의를 토대로 한 우리 군사력을 최고도로 사용한다는 것은, 일본 군대의 불가피하고도 완전한 괴멸을 의미할 것이며, 또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일본 본토의 완전한 파괴를 의미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4) 무분별한 타산으로 일본 제국을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은 방자한 군국주의적 조언자의 손에 일본이 계속 통치될 것인가, 일본이 이것을 결정할 시기는 도래하였다.
(5) 우리들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우리들은 그 조건에서 일탈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또한 그 조건에 대신할 조건도 없다. 우리는 지연을 인정할 수도 없다.
(6) 우리들은 무책임한 군국주의가 세계에서 구축될 때까지는 평화, 안전, 정의의 신질서가 생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까닭에, 일본 국민을 기만하여 그들로 하여금 세계 정복 의거를 일으키게 한 과오를 범하게 한 자의 권력과 세력은, 영구히 제거되지 않을 수 없다.
(7) 이와 같은 신질서가 건설되고 일본의 전쟁 수행 능력이 파괴되었다는 확인이 있기까지는 우리가 여기에 지적하는 기본적 목적을 확실히 달성하기 위해, 연합국이 지정한 일본 국 영역 내의 제 지점은 점령될 것이다.
(8) 카이로 선언의 조항은 이행될 것이며 또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 그리고 우리가 결정하는 여러 소 도서에 국한될 것이다.
(9) 일본 군대는 완전히 무장이 해제된 뒤 각각 가정으로 돌아가 평화적이고도 생산적인 생활을 영위할 기회를 얻게 할 것이다.
(10) 우리는 일본인을 민족으로서 노예화하려거나 국민으로서 멸망시키려는 의도는 갖지 않았으나 우리 포로를 학대하는 자를 포함하는 일체 전쟁 범죄인에 대하여는 엄중한 처벌을 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 간에 민주주의적 경향이 부활 강화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일체 제거하여야 한다. 언론, 종교, 사상의 자유 및 기본적 인권 존중은 확립되어야 한다.
(11) 일본이 그 경제를 지탱하고 공정한 실물 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은 이를 유지하도록 용허될 것이다. 다만 일본이 전쟁을 위한 재군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목적을 위한 원료의 입수(그 지배와는 별도)는 용허될 것이다. 일본이 장차 세계 무역 관계에 참가하는 것은 용허될 것이다.
(12) 전기의 제 목적이 달성되고, 또 일본 국민이 자유로이 표현하는 의사에 따라 평화적 경향을 갖고도 책임 있는 정부가 수립될 때에는, 연합국의 점령군은 즉시 일본으로부터 철수될 것이다.
(13) 우리는 일본 정부가 곧 일본 군대의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또 그 행동에 대한 일본정부의 성의에 적당하고도 충분한 보장이 있을 것을 일본 정부에게 요구한다. 이 이외에 일본이 선택할 것이 있다면, 신속하고도 완전한 괴멸이 있을 뿐이다…”
총사령관
연합군총사령부
(500) AG 091(1월 29일 46) GS (1946년 1월 29일 )
(SCAPIN – 677)
양해각서 수신: 일본제국정부
경유 : 중앙 연락관, 도쿄
제목 : 일정지역에 대한 일본정부와 행정의 분리
1. 일본제국정부는 일본 이외의 지역, 도는 그 지역 내의 어떤 정부관리나 고용인 또는 인력에 대한 정부적 또는 행정적 권한의 행사를 하거나 시도하려는 행위를 중단하도록 지시받는다.
2. 이 사령부가 인정하는 곳 이외에, 일본제국정부는 일상적인 선적, 통신과 기상 이외에 정부적 또는 행정적 권한의 행사를 하거나 어떤 정부관리나 고용인 또는 인력에 대한 통신을 하지 못한다.
4. 기타 지역은 일본제국정부 정부와 행정적 관할에서 별도로 제외되었다.: (a) 1914년 1차세계 대전 이후 일본이 점령한 태평양 지역 섬들, (b) 만주, 대만(Formosa)과 Pescadores, (c) 한국, 그리고 (d) Karafuto.
6. 이 지시에는 포츠담 선언 8조에 언급한 작은 섬들의 궁극적인 결정에 관련된 연합국의 정책을 결정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7. 일본제국정부는 이 지시가 규정한 일본 지역 이외의 일본이 설정하고 있는 지역에 대한 기능에 대하여 본 사령부에 보고서를 준비하고 제출한다. 그 보고서에는 관련된 기관들의 기능, 기구, 그리고 인력에 관한 설명이 포함된다.
8. 위 7 항에 언급한 모든 기관의 기록은 이 사령부에 의한 검사를 위하여 보관되어야 한다.
총사령부 :
(서명)
H.W. ALLEN.
대령, AGD.
장군 부관.
1946년 6월 22일
AG 800.217 (6월 22일 46) NR
(SCAP1033)
일본제국정부에 대한 양해각서
경유 : 중앙연락관, 도쿄.
제목 : 일본 어업과 고래잡이 지역한정
참고 :
(a) FLTLOSCAP Serial No. 80 1945년 9월 27일.
(b) SCAJAP Serial No.42 1945년 10월 13일.
(c) SCAJAP Serial No.587 1945년 11월 3일.
1. 참고 조항 (a)와 (b), 그리고 참고 (c)의 1과 3 절에 따라 권한 부여된 일본인 어업 지역은 폐지된다.
2.
효력발생일자에 인정된 이 지역 내에서 일본인 어업 고래잡이와 유사한 활동 지역범위는 다음과 같다 : 43″23′위도 부근, 145″51′동경 Nosappu Misaki과 Kaigara Jima 사이 43″23′위도 부근 중간선, 145″51′동경에서부터 43″ 위도, 146″30′동경 : 거기까지 45″위도, 165″동경 : 거기부터 남쪽 165도 동경에서 24″위도까지 ; 서쪽 24도 123″동경에서 ; 거기부터 북쪽 26″위도, 123″동경 ; 거기까지 32″30′위도, 125″동경 ; 거기까지 33″위도, 127″40′동쪽 경도 ; 거기까지 40″위도, 135″동경 ; 45″30′위도, 145″동경까지 Soya Misaki 3개 지점 주변 (3) 해변 몇 마일부터; 남쪽 145도 동경을 따라 3개 지점까지 (3) 혹카이도 해안; 거기부터 3개 선을 따라 (3) 혹카이도 해안 몇 마일 Shiretoko Saki과 Nemuro Kaikyo를 지나 Nosappu Misaki과 Kaigara Jima 사이의 중간 해역.
3. 위 2절의 권한부여는 다음 조항을 따른다 ;
(a) Sofu Gan을 제외한 위도 30도 남쪽의 어떤 섬에서 12마일 안쪽으로는 일본 선박이 접근할 수 없고, 그 주민들과도 접촉할 수 없다.
4. 현재 권한부여는 이전의 어떤 인정된 어업 지역에 관하여 권리를 성립시키지 않는다.
5. 현재 권한부여는 이 지역과 관련된 다른 지역의 국가 재판관할, 국제 경계선 또는 어업 권리의 궁극적인 결정과 관련된 연합국의 정책의 표현이 아니다.
(서명)
JOHN B. COOLEY,
대령, AGD,
장군 부관.
SCAPIN No.677 규정한 바와 같이 조항 6은 “이 지시는 작은 섬들에 대한 최종적인 연합국 정책 지시의 결정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 일본정부는 SCAPIN No.677은 일본영토에 대한 최종결정이 아니며, 그리고 1951년 12월 5일자 양해각서에서 개정된 양식을 인용하여, 일본에게 30°위도와 29°위도 사이에 놓인 Nansei 섬들을 반환하도록 반대요구를 하였드며, 거기에서 일본은 “정부적 또는 행정권의 행사의 시도나 행사를 중단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일본 측은 또한 Amami 섬들을 일본에게 반환하여야 하고, 일본인의 류큐와 오가사와라 섬들에 대한 거주권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약간 섬들은 일본에게 반환되었고, 그리고 일본의 몇 몇 섬들에 대한 거주권은 인정되었지만, 그러나 양해각서에서 독도를 일본에게 돌려주라는 지시는 없었고, 독도에 대한 일본인의 거주권도 인정되지 않았다. 독도는 이 상황에서 SCAPIN No.677에서 일본과 분리된다고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결론짓는다. 조약에서는 일본영토에 독도를 부여한다는 내용이 조약에 적극적인 조항이 없기 때문에, 평화조약에서 독도는 일본으로부터 영구히 분리되는 것으로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