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이미지는 사이토 호센의’ 1667년 복사 원본이며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왼쪽 페이지는 오키의 주된 섬 도고(東鄕)를 나타낸다. 두 개의 지도는 위쪽이 남쪽으로 표시되어 있다. . 두 번째 페이지는 오키의 작은 섬 Nishino, Nakano 그리고 Chiburi를 보여주고 있다. 울릉도와 독도는 오키주 어디에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더 큰 이미지를 보려면 클릭하시오)
이 역사적 기록에서 논쟁이 되는 지역은 이 문장의 마지막 줄의 “州”라는 한자의 번역이다. 따라서 아래의 청색 상자는 Saito Hosen의 1667년 보고서의 문장이다. 굵게 표시된 것은 한자글자 “州”이다. 아래 영어는 사이토호 센의 문장의 끝과 논쟁이 되는 한자글자를 제외한 괄호에서 “州”와 “嶋” 의 한자의 활용을 번역한 것이다.
隠
州在北海中故云隠岐嶋
오키 (州)는 일본이 북해의 중심에 있고 따라서 오키섬(隠岐嶋) (嶋 = 섬)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其府者周吉郡南岸西郷豊崎也
그 중심지역은 사이고 토요사키(西郷豊崎)로 수키군(周吉郡)의 남쪽 연안에 있다.
従是南至雲州美穂関三十五里
만약 남쪽으로 35리를 가면, 운주의 美穂関에 닿는다.
辰巳伯州赤崎浦へ四十里
남동쪽을 40리를 가면, 하쿠슈(伯州) 아카사키(赤崎)에 도달할 것이다.
未申至石州温ノ津五十八里
남동쪽으로 58리를 가면, “石州”의 유노츠(温ノ津)에 닿는다.
自子至卯無可往地
북쪽에서 동쪽은 더 이상 살 곳이 없다.
戌亥間行フ二日一有松嶋 又一日程有竹嶋 (俗言磯竹嶋多竹魚海鹿)
서북쪽 마츠시마(독도)에 가려면 (嶋 = 섬)2일이 걸린다. 다케시마(울릉도)에 가려면 하루가 더 걸린다. (울릉도는 소위 이소다케시마(磯竹嶋)라고 불렀다. 대나무, 물고기, 바다사자가 많다.)
此二嶋無人之地 見高麗如自雲州望隠州
이 두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거기서 한국을 볼 수 있는데 마치 운주(雲州)에서 오키(隠州) 를 바라보는 듯 하다.
然則日本乾地以 此州為限矣
그러므로, 일본의 서북쪽은 이 “州”로써 경계를 삼는다.
몇 몇 일본 타케시마 주장자들은 사이토 호센의 위의 문장 몇 줄을 가지고 울릉도는 오키주의 경계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이 기록에서 마지막 문장은 “그리하여 이제, 일본의 서북쪽(경계)은, 이 섬(울릉도)로 정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번역에서 마지막 줄 “섬에서 “州”라는 글자는 아래에 줄친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정확하지 않다.
본인들의 ‘오키 주 보고서’의 해석은 처음의 서문의 끝 문장에서도 별개로 나타난다. 여기서 쓰여진 것은 “Oki(주)는 북쪽 바다의 중심에 있고 그래서 Oki 섬이라고 부른다…” 다시말하면, 오키노 시마(隱州嶋)오키노시마 여러 섬은 그 자체가 하나의 주였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울릉도와 독도를 제외한 것으로 오키섬의 일부가 아니며 사이토호센의 지도는 다음과 같은 확인을 하고 있다.
위: 망원렌즈 없이 찍은 사진은 울릉도 거주민 김남희씨가 2008년 한국의 동해안(태백산)을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은 울릉도 주변에서부터 한국을 볼 수 있는 가시성을 확인해 준다. (더 큰 사진을 보려면 두 번 클릭하시오.)
사이토 호센은 일관되게 “州”를 “郡-district”의 뜻으로 사용하고, “嶋”를 “섬”으로 뜻을 사용하였다.
사이토 호센은 “州” 또는 지역을 표현하기 위해서 적어도 6번 이상 이 짧은 문장 속에서 사용하였다. 그는 또한 “島”라는 단어를 적어도 5번 사용하였다. 만약에 죽도(울릉도)가 확실히 경계였다면, 그는 왜 竹島 또는 “以此島” (이 섬들)을 직접 지적하지 않았을까? 번역에서 일본인들이 州라고 표현한 것은 사이토 호센의 보고서 나머지 부분에서 한자의 적용을 생각해보면, 문장의 내용과는 전혀 맞지가 않다. 실제로 “州”라는 글자는 “섬들”을 표시한 것이 아니다.
17세기 일본의 국가, 지역 지도에서는 항상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에서 제외하였다.
사이토 호센의 보고서에서 그는 모든 주, 섬 그리고 심지어 Oki 섬 주변의 작은 빈 공간까지도 설명한다. 사이토 호센은 울릉도와 독도 또는 다른 주가 오키(隱岐)의 일부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사실상, 그가 첨부한 오키주의 지도는 울릉도와 독도를 설명하지 않았다. 1695년 말기, 시마네가 막부에게 답하기를 울릉도와 독도는 호키(伯州)와 온슈(隱州)에 속하지 않는다고 답신하였다. 따라서 만약 울릉도와 독도가 오키, 호키 또는 인바슈((因幡州)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일본인들은 그 섬들을 어디에다 귀속시켰을까?
위 왼쪽: 이 지도에서 오키 섬들은 1660년대에 그려진 것이며, 사이토호센이 오키보고서를 쓴 시대와 같은 때에 그려진 것이다. 사이토 호센의 지도처럼, 울릉도와 독도는 표시되지 않았다. 위 오른쪽: 19세기 초에 오키 주를 그린 또 다른 하나의 지도. 이 지도의 제목은 오키주 “隠岐國”임을 잘 보시기 바란다. 이 경우에 “國”이라는 글자는 구(군) 또는 지역을 말한다. 이 지도는 오키주 전체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울릉도와 독도는 찾아볼 수 없다.
17세기 마츠시마(송도-독도)에 관한 일본지도
17세기 일본의 독도지도는 일본과는 분리된 바위섬으로 표시하고 있다.
“마츠시마(松島)의 설명지도(松嶋絵図)”는 요나고시 산인켄(山陰縣) 역사박물관(米子市立山陰歴史館)에 있다. 이 지도(오른쪽)는 1656년으로 추정되는 17세기에 그려진 일본의 독도(松島)지도. 이것은 무라카와 가문(村川家)의 소유물로 생각된다.
독도와 관련하여 일본의 영토한계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정보가 이 지도에 있다. 먼저, 독도를 언급하는 위 오른쪽 문장에서 “오키국에서 마츠시마(松島까지의 항해 거리는 약 100리이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독도가 오키국의 일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와 반대로 마츠시마(松島-독도)는 일본 오키군의 밖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또한 이 지도에는 언급하기를 “독도에서 울릉도까지 거리는 30리”라고 하였다. 일본의 독도지도에서 조선의 울릉도를 언급한 것은 울릉도와 독도가 오래전부터 자매섬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이론을 지지하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당시(17세기)의 지도는 일본의 독도로비스트들의 이 보고서 해석을 지지하지 않는다. 17세기 국가지도는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님을 증거해 줄 뿐 만 아니라, 오키섬들은 지도의 국경에서 “北”이라는 한자로 나타나고 있다. 오키군의 지역지도에서는 비록 그 섬들이 서북쪽에 있다고 하였지만, 일관되게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들 그림은 이 지역으로 가는 항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위 왼쪽: 사이토호센의 1667년 ‘오키 보고서’가 나오기 몇 년 전 그려진 이 국가지도는 오키섬들을 일본이 서북쪽 한계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키섬들의 옆에 한자 “北”을 주의해서 보기 바란다). 위 오른쪽: 이것은 1730년 지도에서 역시 Oki 섬들 “隠岐”를 일본의 “北”으로 삼고 있다.(이미지를 클릭하시오)
사이토 호센의 보고서에서 오키에 관한 표현 인용구 “見高麗如自雲州望隠州”은 그 지역에 대한 일본의 소유권을 말하는가?
Saito Hosen의 인용 부분은 울릉도와 독도 다음에 일본 역사적 지도에서 발견된다. 문장부분 “見高麗如自雲州望隠州” (여기서 한국을 볼 수 있는 것은 마치 운슈(雲州)구에서 오키(隱岐)를 보는 것과 같다.).
오늘날, 몇 몇 일본인들은 지도에서 이 문장이 당시 일본인들은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의 일부라고 생각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이 그림에서 지도들은 유명한 일본의 지도학자 Nagakubo Sekisui가 1779년 경에 그린 것이다. 이것은 일본 막부가 공식적으로 울릉도 (竹島)가 조선의 영토라고 선언하고 거기에 항해를 금지한다는 선포한지 80년이 지난 후에 그린 것이다. 이 사실로 미루어보아, 사이토 호센의 일본역사지도에서 나타나는 문장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소유권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섬들과 한국사이의 가시적인 연대성을 더 잘 강화시켜주는 것이다.
위 왼쪽: 나카쿠보 세키수이(Nagakubo Sekisui)의 1779년 일본 지도의 전체모양. 위 오른쪽: 사이토호센의 1667년 보고서에서 섬 옆에 쓰여진 “見高麗如自雲州望隠州”의 부분에서 울릉도, 독도(竹島~松島)지역을 확대한 것.
오키국에 관한 보고서의 또 다른 중요한 인용문.
이 역사적 기록을 자세히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인용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元和四年春三月又伯耆国大買村川氏自官賜朱印致大舶磯竹島(울릉도)..”
이를 번역하면 “…겐와 4년(1618년) 봄, 호키국 무라카와 일가가 조정으로부터 홍인상(朱印狀)을 받아 큰 배를 울릉도(磯竹島)로 보냈다”는 뜻입니다…”
무라카와 일가는 당시 외국으로 항해하는 자에게 주어지던 홍인항해권을 가지고 울릉도 항해 허가를 받았다. 즉, 일본 최고 권력층은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 땅이 아닌 외국의 섬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이토 호센의 1667년 ‘오키섬에 관한 보고서’ – 자세한 분석에 근거한 결론
오키군(隠州)은 일본의 영토한계였으며, 울릉도(竹島)는 아니었다.
일본의 오키 보고서 해석은 문서 자체의 내용으로 보아도 의심스럽다. 이것은 사이토 호센의 일관된 한자 사용이 “州”를 섬이라고 의미하여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지도와 당시의 기록으로 참고하여 보면, 일본의 Saito Hosen 1667년 보고서 해석은 성립될 수가 없다. 일본의 국가 또는 지역 지도에서 17세기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것을 지지하는 주장을 지지하는 지도내용은 없다.
일본 “역사가들”의 이 기록 해석은 일본과 그 이웃영토에 관한 진실한 역사적 좋은 연구가 없이 정치적 의제로서 또는 자기들이 바라는 생각에 동기를 가진 것이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몇 몇 일본의 역사가들 예를 들면, Hideki Kajimura 같은 사람은 사이토호센의 ‘오키에 관한 보고서’에 대해서 가능한 해석을 한다. 이 문서는 오키섬들을 일본의 영토한계라고 밝히면서 울릉도와 독도는 제외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가까운 가시성을 말하면서 조선의 땅이었음을 가장 가능성 있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