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페이지는 독자들과 같이 독도 지역을 친숙하게 하기 위하여 가시적으로 독도의 가장 근접 어업 마을을 소개한다. 독도는 리앙쿠르 암초(독도) 또는 일본에 의해서 다케시마라고도 불려진다. 이 이미지들은 20세기 초 한국의 울릉도 기사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1905년 독도 편입 당시 한국의 경제적 이익과 현재 상황에 관한 독자의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이 글 위에는 두개의 지도가 있다. 이미지 왼쪽으로는 동해(일본해)의 전체적인 지도이다. 이 지도는 독도에서 일본과 한국 섬들까지의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지도 오른쪽에는 울릉도 섬이다. 한국의 울릉도는 독도의 가장 근접한 섬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4개의 독도근접한 한국의 울릉도의 어항들. 현포, 사동, 저동 그리고 도동 항구이다. 모든 이들 공동체는 한 가지 이상으로 그들의 생활에서 울릉도와 독도 주변 수역들과 관련되어 있다.
독도 다케시마 지역의 1905년 어업 그리고 경제적 상황은 어떠했는가?
1905년 일본 강제적으로 독도 편입을 하기 훨씬 이전에(링크), 한국 그리고 울릉도는 매우 다른 곳이었다. 대부분의 울릉도에서 한국인의 생활은 일본인에 의해서는 통제되고 있었다. 이것은 특히 이 지역 어업과 관련하여 진실한 내용이다. 20세기 초, 몇 몇 불법일본인 어업이 한국의 울릉도 주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숫자는 1,000명으로 늘어났다. (링크) 따라서, 한국 어업은 일본인 울릉도 도해자들보다 뒤쳐져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근대 어업은 동해(일본해)에서 물론 현재 상대방 일본인들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현대화 되었다.
“따라서, 21 세기 독도 다케시마 지역에서 일본의 시마네현의 요구는 경제적 실체와 관련성이 있는가..?”
사진은 울릉도 독도 지역 당시 그리고 현재
한국의 20세기초 울릉도 저동 항구
울릉도의 서쪽편은 저동 항구이며 울릉도에서 가장 큰 어업 항이다. 저동항 입구, 촛대 바위가 높이 하늘에서 선을 보이고 있다. 아래 보여준 저동의 매우 오래된 사진은 아주 작은 만에 일본과 한국 집들이 혼재되어 보인다.
이들 역사적 사진은 20세기 초 항구가 개발되기 이전의 울릉도 저동항을 보여준다.(사진 클릭)
당시 그리고 현재: 이 이미지 위는 저동의 북측을 보여준다. 위 왼쪽은 20세기 초, 그리고 오른쪽에는 저동의 오늘날을 찍은 것이다. 각 사진 배경은 부처바위 그리고 더 북쪽은 죽도(竹島) 섬이 약 3km 떨어져 있다.
울릉도의 오늘날 저동 항구
우리가 알다시피, 울릉도는 지난 세기 한국의 믿을 수 없는 변화처럼 다른 곳이 되었다. 저동 항구는 현재 울릉도의 가장 큰 오징어 어업 배들의 기지가 되어 있다. 바위 해변이었던 곳은 세멘트 방파제 접안 시설로 되어 있다. 보기에 큰 콘크리트 방파제는 잦은 동해의 폭풍으로부터 저동 항구를 보호해 준다.
오늘날 저동의 해변들은 식당, 숙박시설, 상점, 그리고 바닷고기를 얼리는 얼음공장으로 혼잡하다. 저 멀리 고층 아파트들은 지방 상인들과 어부들이 주거지이다. 이 집들은 오래전 울릉도에서 한국의 전통 초가지붕을 대신하여 지어졌다.
위 이미지들은 20세기 초, 그리고 오늘날 저동의 남쪽 해변의 같은 위치에서 찍은 것이다. 아래 이미지들은 울릉도의 현대 저동 항구다. 이곳은 독도와 가장 가까운 어업 마을이자 큰 한국 어선 기지이다. 거기에는 현재 방파제, 콘크리트 계류장, 아파트, 그리고 수많은 상점들이 저동해변에 늘어져 있다.
사진은 당시 그리고 현재 한국의 울릉도 도동 항구
울릉도의 도동 항구 – 20세기 초
저동 항구의 남쪽, 울릉도의 동쪽은 도동 항이다. 이 항구도시는 오랫동안 울릉도의 행정구역이었다. 오래된 아래 사진에서 우리는 일본 식민주의 시대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일본 군인이 항구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세기 초 일본인들은 울릉도의 대부분의 운송항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어업 배들 이 한국의 먼 남쪽 섬들인 거문도 그리고 전라도의 초도 등지에서 항해하여 왔다. 오래된 구식 어업 배들이 도동 항구의 해변에 접안하여 있다.
도동 항구 널빤지 나무로 된 한국 집들. 위 오른쪽은 울릉도에서 일본 거주자의 영향으로 지은 일본인 신사가 보인다.
위 왼쪽 보이는 것은 매일 북적대는 도동 항구의 오늘날 모습이다. 오른쪽에는, 20세기 초 울릉도의 도동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보이는 일본인 배들 사진이다. 거기에는 도크도 없는 바위해변이다. 자세히 보면 사진 위 오른쪽에는 일본 군인이 접안한 큰 배위에 서있다.
울릉도의 도동 항구 위 언덕에서 찍은 사진. 건물들은 일본인 건축의 영향을 보여 준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울릉도 도동에서 원목과 같은 물자를 실어 나르는 화물왕복선이다.
울릉도의 도동 항구의 현재 모습
말할 필요도 없이 20세기 초에는 울릉도나 독도에는 관광산업이 없었다. 그러나 이 현대 이미지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한국은 이 섬 모든 곳에서 산업을 이루어냈다. 항구는 호텔, 식당 그리고 클럽과 탐험을 즐기는 외국인들을 위한 시설 경제활동의 중심이다.
지난 몇 해 동안 독도를 방문하는 제한이 많이 완화되었고 그 자체가 새로운 관광 자원이 되었다.
독도의 가치는 매우 높다. 왜냐하면 독도는 따라서 일본의 오키섬에서는 너무 멀고, 따라서 일본이 독도를 활용하기는 의심스럽다. 현재, 울릉도에서 독도 항해는 왕복 약 3시간이 걸린다. 일본에게 독도관광, 가장 근접 섬인, 오키섬(157kms)에서 관광을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비경제적이다.
현대 울릉도 도동. 고속 쾌속선들이 경북 포항과 동해시를 왕복한다. 항구는 수 많은 호텔, 식당 그리고 상점으로 가득하다. 울릉도의 도동 항구는 역시 한국 어선의 고향이다.
오늘날, 도동 항구는 아직 울릉군 행정 중심지이다. 도동은 매우 분주한 항으로 현재 관광객 그리고 어선으로 북적대는 곳이다. 관광페리 역시 기상이 허락하면 울릉도에서 독도로 왕복한다. 도동 항구의 골짜기는 한때 원시적인 초가집으로 가득 찬 곳이었으나, 현재는 고층 호텔, 식당, 그리고 울릉도의 많은 관광객을 위한 클럽으로 가득 차 있다. 항구 언덕 위는 정부 행정기관, 그리고 울릉도-독도 박물관이 있다.
사진은 독도 지역 울릉도의 당시 그리고 현재, 한국의 현포 – 천부동 항구
울릉도의 현포 – 천부 항구들, 20세기 초 오래된 사진
현포 그리고 천부 항구 지역은 울릉도에서 대부분 농업 구역이었다. 아래 사진, 경관에서 바위가 매우 많다. 계단식 밭이 식량의 원천이었고 어부들의 모습은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다. 배경은 노인봉이며 그리고 더 멀리는 송곳봉이다. 해변 약간 떨어진 곳은 코끼리(구멍) 바위 그리고 수정바위이다. 우리가 자세히 보면 한국의 초가집이 바위, 너와 지붕과 함께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척박한, 바위 땅에서는 농사를 하며 생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20세기 초, 현포 항구는 실제로 해변가의 작은 바위 마을에 불과했다. 한국 초가집이 노인봉 바위 그늘에 보인다.
이 사진들은 한 세기 이전에 단 일 미터 떨어진 곳에서 찍은 사진이다. 울릉도 북쪽 해변의 발전상 비교를 눈으로 보여 준다. 왼쪽으로는 현대 현포 항구사진인데 콘크리트 방파제가 있다. 배경은 코끼리 바위, 노인봉 그리고 송곳봉이다.
울릉도의 현포 그리고 천부 항구.
오늘날, 현포 항구는 울릉도의 북쪽 해변의 두 어촌 중의 하나다. 현포는 현재 어업선단의 계류장을 가지고 있으며 큰 방파제가 힘든 바다를 보호하기 이하여 건설되었다. 현포 항구 가까이에는 농사지을 땅이 거의 없다. 동쪽 천부 항구는 현포처럼, 현재 긴 시멘트 방파제 그리고 계류장이 있다. 울릉도의 북쪽 해변은 맑은 물 그리고 숨막히는 광경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오는 곳이다.
위 왼쪽은 현대 현포 항구와 그 주변 언덕이다. 위 오른쪽은 천부 항구가 송곳봉 가까이에 있고, 시멘트 방파제가 어선들을 독도-울릉도 지역 어업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건설되어 있다.
20세기 초 그리고 오늘날 독도-울릉도 어업
울릉도는 아직 독도가 생존하기를 요구한다.
이 페이지 사진은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이미지들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이 사진은 울릉도 – 독도 지역 20세기 초 어업이 어떻게 현대화되었는지를 보여주려는 목적에서 찍은 것이다. 원시적인 한국의 초가는 사라진지 오래다.
또한 사라진 것은 조악한 노젓는 배로 근접 수역에 한정된 어업을 위한 울릉도의 어부들의 배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과 동등하게 자체적으로 어업을 자연스럽게 개발한 것 같다. 20세기 초 울릉도 어부들에게 독도 항해는 하루 이상이 걸리는 작업이었고 그리고 이 어로활동은 계절적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어선과 관광선들은 두어 시간이면 항해할 수 있고 일 년 중 언제나 갈 수 있다.
이런 생각과 함께, 독도의 가장 근접 섬인 울릉도에서 독도를 통치하지 못하고 인접 수역에서 한국인들의 어업을 못하게 금지해달라고 요구하는 일본은 매우 부당하다. 왜 일본은 아직도 자기 섬에서 멀리 떨어진 수역들 그리고 심지어 고대 한국영토의 가시적인 거리 내에 있는 섬들에 대해서 권리를 주장하려는가? ?(링크)
위 왼쪽 보이는 것은 한국 남자가 울릉도의 해변의 어업 자원, 예를 들어 조개, 김을 수확하기 위하여 뗏목 위에 서있는 모습이다. 위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은 새로운 사동 항구에 거대한 시멘트 사각형 덩어리를 산 위에서 볼 수 있다. 사동의 새로운 항구는 거의 완성되었다고 한다.
위 왼쪽은 사동의 커다란 콘크리트 부두 시설을 해면에서 본 것이다. 위의 한국 어부들은 거문도에서 왔다. 수 십년 동안 이들 열정적인 어부들은 500km를 항해하여 울릉도 지역으로 와서 봄에 울릉도의 풍부한 해양 자원을 채취하고 섬에서 배들 건조하였다.
위 오른쪽은 사동 가까이 있는 일본인 어촌으로 옛날에 울릉도 지역에서 일본인 어부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준다. 전통복장을 한 일본인 여자가 오징어 건조를 하고 있다. (클릭 이미지들.)
위 왼쪽: 울릉도의 천부 항구의 현대 한국 어부들이 관광객에게 손을 흔든다. 위 오른쪽: 독도의 동도 부근에서 고기를 잡은 울릉도의 도동 항구 한국 어부들.
왜 일본은 독도-다케시마를 가질 수 없는가? 제 4부: 결론
“… 일본의 최근의 주장은 현대 동북아 현실과 맞지 않는다….”
일본의 시마네현 다케시마 브로슈어를 읽어보면 그들은 노골적으로 “우리의 바다”를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독도가 역사적으로 일본인의 것인가?
일본의 시마네현은 한 가지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리앙쿠르 암초(독도)를 편입할 무렵 ,동해(일본해) 수역항해를 금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은 어떻게 일본이 이 수역들을 통제하고 그리고 왜 그들의 주장이 케케묵은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메이지 시대 두 개의 조약, 1876년 강화도 조약 그리고 1905년 일본과 한국 간의 수정된 조약합의서는 일본이 어떻게 울릉도 항해 그리고 한국의 영해를 항해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였는지를 보여 준다.
강화도 조약 (링크)은 일본의 “현관”이자 전체 한반도의 편입을 향한 일본인의 침입경로였다. 일본은 항해권리를 거부할 경우 전함외교의 위협을 통하여 한국 수역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였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조항 6 그리고 7에서는 일본해군과 상선이 한국 수역들에서 마음대로 측량할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하였다. 그것 역시 일본 배들에게 한국 연안지역 그리고 항구를 항해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다.
위 왼쪽: 시마네현의 브로슈어 주장은 그들에게 “우리의 바다”를 돌려달라는 것이다. 위 중앙, 그리고 오른쪽: 1876년 강화도 조약은 한국의 주변 바다 그리고 해안 수역들을 일본해군과 상선들에게 개방하였다. 일본은 군대 침략 위협으로 이들 항해 권리를 “획득”한다
몇 십 년 후 우리는 일-한 조약 합의서 원본을 볼 수 있었다. 이 조약은 역시 위협과 강제의 결과로 1904-1905년 러일전쟁의 발발에서 서울에 일본군대를 주둔시켜 체결한 것이다.(링크) 이 조약은 일본군이 한국의 전략지역을 점령하는 것으로 서명되어 있다. 그것은 일본이 독도를 편입시키고 러시아 해군을 대마도 전투에서 패퇴시킨 후 단 한 달 만의 일이었다. 이 합의서 역시 일본 선박이 한국 해안 그리고 본토 수역을 자유로이 항해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시킨 것이었다.
위 이미지들은 미국 외무부 기록이다. 기록에는 1905년 8월에 한국 해안 그리고 본토 수역을 자유로이 항해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시킨 것이다.
이 웹사이트 페이지에서 보여주는 것은 일본이 역사적으로 울릉도와 독도(다케시마)를 그들의 영토에서 모두 제외시켰고, 또 그 섬은 한국 것이라고 인식해 왔다. 그러나, 이제 과거 쓸데없는 역사적 논쟁을 피하여 또 다른 독도 다케시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 방안을 모색할 때다.
한국의 울릉도은 주변 수역들은 더 이상 일본인의 영향 아래에 놓이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한국영토 경계는 1905년 상황에서 결정될 수가 없다. 한국의 울릉도 어부들은 독도의 가장 가까운 섬에서 좋은 기회를 가졌다고 해서 처벌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그들은 일본의 오키섬 어부들과 마찬가지의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울릉도는 그들의 자신의 해양만큼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자연히 독도는 한국의 영토 내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근대 맥락에서 독도 지역의 실체를 안다는 것은 일본이 왜 독도 다케시마 주장을 하는지에 대하여 분명하게 다시는 주장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의 일본식민지 통치시대에서의 자유 그리고, 독도 지역 지리적 실체, 그리고 강화된 현대 울릉도의 어업 그리고 관광산업은 일본이 다시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생각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