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의 한국 영토점령과 독도 3

일본제국 육군과 해군은 한국과 중국의 전략 지역을 탈취하다.
첫째 두 페이지에서, 이 기사는 전체적인 일본과 한국지도 참고를 보면서 시작하고자 한다. 지도 오른쪽에는 일본의 군사지도는 電文, 機構 그리고 일본이 병합한 지역을 나타내는데 중국의 랴오뚱(遼東) 반도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붉은 색 영어로 내용을 참고로 표시하였다. 이 그림의 날자는 메이지 38년(1905년) 1월이다. 이 시기에 일본은 뤼순(여순-대련)항을 함락하였다. 일본은 여순항을 함락한지 한 달 후, 해저전선을 가설하는데 그것은 명확한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 지도는 독도 편입 이전 날자이며, 그리고 우리는 아직 일본이 독도 섬을 활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실현하지는 않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일본 전함 대마도호의 항해일지 기록은 이 지도를 그리기 2달 전에 독도를 측량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독도 측량 지도들은 이 페이지 아래에 있다. 아래 한국과 일본 지도는 1905년 1월 1일자 지도의 전체적인 내용 개요이다.

중국 랴오뚱 반도(여순항)의 일본의 군사지도들
이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국은 동북아에서 일본이 군사적 목적으로 점령한 유일한나라가 아니었다. 아래 지도들은 랴오뚱 반도와 한국 서쪽의 일본해군 시설을 보여준다. 위 지도는 망루와 통신소 건설을 위한 준비를 위한 랴오뚱 반도에 대한 상세한 측량지도이다. 해안선의 점선윤곽은 높은 고도에서 그린 것이다. 이들 지역은 물론 통신소에 적합한 곳이며 그리고 분명히 망루건설에도 좋은 곳이다. 아래 왼쪽 붉은 박스로 표시된 지역은 이웃 산에 위치한 통신소의 위치 측량지도이다.

두 번째 지도는 랴오뚱의 연안지역을 따라 망루의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주변의 둥근 망루는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고 각 위치에서 가시거리를 나타내고 있다.

위의 일본의 군사지도 원본들은 러일전쟁 당시의 지도들이다. 지도들은 망루가 일본이 러시아 군을 여순항에서 몰아낸 이후 불법적으로 건설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지도들은 일본의 군사 망루위치를 나타낸 지도들이다.
이 페이지는 일본의 역사 기록물보관소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러일전쟁 당시 일본해군의 망루를 보여주고 있다. 붉은 글씨 내용은 그 지역 지리적 참고를 위하여 표시한 것이다. 망루를 그렸을 때, 둥근 원은 가시 범위를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 보여준 지역은 가시거리와 가시거리 밖을 나타낸다. 원은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물론, 일본의 독도 편입은 울릉도 그리고 오키섬 사이에서 동해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해군이 이 목적으로 독도를 자발적으로 측량을 결정한 것은 1904년 11월 이전으로 돌아간다. 아래 지도는 한국과 일본의 일부 주변에 설치한 모든 망루의 전체적인 표시이다.

위 지도는 한국영토에 설치된 일본의 군대 망루 위치를 보여준다. 그것들은 또한 일본의 연안지역의 망루 위치도 나타낸다. 어떻게 독도(당시 竹島)가 직접 이 방어계획에 포함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일본 군대는 한국과 동해(일본해)를 통제하기 위하여 독도를 활용하였다.
아래 내용(왼쪽)은 역시 일본 아시아 기록물보관소에서 1905년 10월과 11월 시기에 나온 것이다. 붉은 내용은 원본지도에 지리적 위치를 보여주기 위하여 추가로 표시한 것이다. 지도는 역시 이미지 파일 크기를 약간 줄이기 이하여 조절하였다. 위 오른쪽 지도는 이들 통신선이 연장된 곳을 나타낸다. 그것은 명확히 이들 선들이 한국 국경 연안지역 그리고 북서쪽 약 200km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 항의 해군 활동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독도 군사화의 증거를 볼 수 있다. 해저 통신선은 마츠에에서, 일본~독도~울릉도 그리고 그리고 북쪽으로 원산으로 이어진다. 이들 선들은 흔히 현재 북한 지역인 북쪽의 일본 군대와 연결되고 있다.(보다 상세한 이미지는 클릭하시오)

위 왼쪽: 이 일본의 군사지도는 한반도를 통제하기 위하여 정확히 어떻게 일본의 제국해군이 통신선을 가설했는지를 보여 준다.
일본군의 한국영토 점령과 독도 요약
통신선이 독도에 어떻게 가설되었는지를 보기 바란다. 위 오른쪽 지도는 지리적 참고를 비교한 것이다. 앞의 두 페이지는 메이지 37년과 38년(1904년~1905년)의 일본 군대의 한국 땅 주둔과 독도 지도들로 일본해군 기록물보관소에서 나온 것이다. 그 지도의 대부분의 적군 특히 러시아와의 전투를 위한 통신소 위치와 건설을 정확한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들 문서들은 당시 민간인 또는 공공기관에서 그린 것으로, 따라서 그것은 이들 영토 측량은 명확히 군사적 목적으로 지도를 그린 것이 분명하다. 전반적인 일본지도의 통신소는 이 시대의 일본의 군대의 야심을 지도로 설명한다. 이들 통신소는 일본본토의 주권을 보호하기위한 것 이상이다. 이 시설구조들은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새로이 획득한 중국의 랴오뚱 반도로 연장되고 있다.

보는 바와 같이, 독도 편입은 명백히 한국의 식민지화, 그리고 동북아에 대한 통제를 주장하기 위한 일본의 전체적인 계획의 일부이다. 일본 외무성의 성명에서 시마네현의 1904년~1905년 독도편입은 역사적 상황에서 해산물 취득을 위한 것이 아님이 명백히 밝혀졌다. 이것은 또한 일본 해군 지도들에서 그들의 망루 위치가 한국과 일본의 연안지역에 있었음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