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의 한국 영토점령과 독도 2

이 시리즈 2페이지는 러일전쟁 1904년~1905년 동안 일본의 한국 땅 점령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정보의 주된 근거는 일본의 디지털 역사 기록물 센터(JACAR)이다. 이들 문서들과 지도들을 통하여 독자는 어떻게 그리고 왜 일본 독도를 “편입”하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독도의 편입은 실제로 일본 해군과 육군이 한국(그리고 아시아)에서 군대의 점령으로 땅을 뺏은 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페이지 더 많은 문서들이 발견되기 때문에 항상 변화하고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지도 오른쪽에는 또 다른 일본의 군사지도 원본. 관심되는 부분은 붉은 글씨로 독자들을 위하여 영어로 표시하였다. 이 그림은 독자들이 각 지도를 따라 참고할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하다. 더 높은 해상도를 보시려면 클릭하시오.

지그재그 선으로 표시된 연안지역은 군사 해저케이블로서 사세보(左世保-나가사키)에 있는 일본해군 기지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이다. 모든 이미지들은 메이지 37년과 38년(1904년~1905년) 일본정부 해군 기록보관소에서 나온 자료들이다.

우리는 독도가 청색으로 표시되고 이 지역은 일본 해군과 육군의 전체 방어계획에 편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계획은 나중에 변경되고 따라서 전선망은 독도에서 일본 본토 마츠에로 연결되지 않고 일본 오키 섬을 연결한다. (지도를 보시오)

우리는 1904~05년 일본해군 기록에서 일본과 한국 연안지역의 모습이 확실히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일본해군 구축함들은 군사 전략적으로 모든 섬들에 파견된다. 이 섬들과 연안지역 지형적인 측량은 망루, 통신소, 그리고 무선시설에 가장 좋은 위치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의 동해안 일본의 군사시설은 원산과 영흥항구로 연장된다.
일본은 원산항과 그 지역 아래의 한국영토를 장악한다. 지도. 원산은 현재 북한지역이며 러시아와 가까운 곳으로 특히 Vladivostok 항과 가까운 곳이다. 따라서 원산은 러시아 해군이 한반도 남쪽을 감시하기 쉬운 곳이다.

1904년 4월, 후방 제독 Essen의 깃발을 달고, 구축함의 호위를 받아 러시아 구축함들은 원산을 정찰하고, 일본의 연안 선박 2척과 군수송선 Kinshu-Maru를 파괴하고 갑판에 있던 군인들을 살상한다. 아래 지도들은 일본해군의 러시아의 이런 정찰에 대항하는 방어적인 수단을 설명한다. 여기서 보는 원산은 남쪽으로 해저전신망으로 연결되어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대부분 국경을 연결하고 있다. 이들 지도들은 해저 전신케이블 뿐 만 아니라, 러시아 해군을 저지하기 위한 해저기뢰의 위치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매우 흥미로운 자료이다.

위 일본의 군사지도들은 원산 항구에 설치한 수많은 시설을 설명하고 있다. 망루들과 통신시설 그리고 해저 기뢰는 원산과 영흥만에서 러시아의 Vladivostok 함대를 저지하기 위하여 부설한 것이다.
일본 군은 한국의 인접 섬들 – 부산 가까이에 있는 절영도를 점령한다.
문서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섬은 부산 항구 가까이에 있는 절영도에 망루와 통신소를 건설하기 위하여 측량한 것이다. 도고(東鄕) 제독의 함대는 1905년 대마도 해협 대마도 전투에서 접근하는 러시아 발틱함대를 여기서 기다렸다. 이들 지도들과 함께 지도에는 어디에 망루와 통신소 그리고 무선안테나를 세울지를 설명하는 영토측량을 하였음을 보여준다.

이 지도 오른쪽 옆에 기호가 표시되어 있다. A는 시설 표시이며, B는 지도에서 망루(望樓)를 표시하고, 그리고 D는 음료수가 나오는 곳이다. 물론 조선 해협과 접하는 남쪽 지역은 군사 초소로서 가장 좋은 곳으로 선택되었고, 기상 관측소는 한국과 대마도 섬 사이의 좁은 해로를 잘 볼 수 있다. 오늘날까지, 절영도의 이상적인 해안 위치는 현재 부산의 일부로서 등대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의 남해안의 일본군 망루 – 제주도 그리고 이웃 섬 우도
한국본토와 한국의 울릉도 섬 사이에는 제주 해협이 있다. 제주의 남쪽 해변 그리고 이웃하는 섬 우도에 망루를 설치함으로서, 일본해군은 두 지역에 통과하는 함대를 감시할 수 있었다. 첫째 제주 해협은 제주도의 남쪽 수역을 감시할 수 있다. 전체적인 일본지도해군 망루는 여기에 볼 수 있다. 이 시설을 설치한다는 것은 한국수역에 들어오는 외국 전함들(특히 러시아)을 감시하려는 것이고 그것은 조선과 멀리 대마도 해협의 수역 주변을 중점적으로 안내할 수 있는 것이다.

위 왼쪽: 이 한국 제주도의 사진은 섬의 서쪽에 설치한 망루이다. 위 오른쪽: 제주의 작은 이웃섬 우도에도 역시 망루(望樓)가 설치되어 한반도 남쪽 끝을 항해하는 배를 감시할 수 있다. 우도의 망루는 360도 모습을 보여준다.(이미지 클릭)
한국의 남쪽 헤밀턴 항(Hamilton 한국의 현재 거문도: 巨文島) 그리고 서쪽 섬 울도의 일본의 군사시설.
제주해협에서 남쪽으로 작은 섬들 은 3개의 섬들이 있는데, 두 큰 섬은 서도(西島) 그리고 동도(東島) 동쪽으로는 선호도가 항을 이루고 있다. 이 중앙섬의 관측섬은 고도(古島)라고도 한다.

거문도의 전략 중요성은 일본이 1905년 이 섬을 통제하기 오래 전부터 잘 인식되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1884년 거기에 기지를 세울 것을 제의하였다. 1885년 4월에, Hamilton 항은 영국 Royal 해군 제독의 명령으로 전함 3대에 의하여 점령되었다. 이것은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에서 Panjdeh사건에 직면한 러시아를 봉쇄하기 위한 것이다. 거문도항은 Vladivostok에 있는 러시아 해군 기지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巨文島를 점령함으로서, 영국은 러시아의 동 아시아 진출을 막고, 한국 해협에서 러시아 해군을 봉쇄할 수 있었다.

위 왼쪽: 이 지도에서 붉은 색으로 칠한 부분은 한국의 거문도(巨文島)의 일본의 군대 망루이다. 위 오른쪽: 일본 지도에는 한국의 서쪽 한강 후미 해안의 작은 울도 섬의 일본군 주둔지를 보여준다.
특히 여기서 거문도 지도를 보면, 우리는 이 섬의 중요성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거문도 남쪽 망루는 우도 섬에 위치한 망루와 나란히 활용된다. 이것은 분리된 섬의 해양에서 60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문도 그리고 제주도~우도 사이에서 적함대가 탐지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역시 명확히 거문도가 제주/우도~팔문도 그리고 일본의 사세보(左世保-Nagasaki)에 있는 해군 기지를 연결하는 통신선에 중요한 허브로 역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울도 섬은 독도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서쪽 해안의 작은 고립된 섬이다. 이것도 역시 울도의 위치가 전략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울도도 역시 서쪽의 뤼순(여순)항에 주둔하고 있는 적군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고 있다. 이 섬은 한강의 하구와 인천항을 침략으로부터 보호한다. 울도에서 백령도 통신선은 러일전쟁 당시 여순항이 함락된 후에 가설되었다. 이 시리즈에서 모든 일본의 군사지도들처럼 범례는 울도 남쪽 끝의 망루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군의 독도 군사지도
독도의 일본 군사지도들은 먼저 1904년 9월에 일본제국 전함 니타카(新高)호의 활동에 활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이 섬에 군대의 구조물 건축이 가능함을 보여 준다. 이 첫째 독도 이미지는 한국의 울릉도 남쪽 망루에서 본 독도의 모습을 대략 스케치한 것이다. 이 도면은 1904년 9월 25일 니타카(新高)의 항해일지에 포함된 것이다.

일본해군은 동해(일본해)에서 러시아의 해군이 이 지역에서 일본해군 수송선을 격침한 후 발생한 긴장 때문에 독도에서 이익을 얻은 것이다. 약 한 달 전, 울릉도와 독도에서 멀지 않은 울산에서 전투가 발생하였다. 니타카의 항해일지가 역시 기록한 바에 의하면, 러시아 해군 선박이 독도 가까이 나타난 것은 일본에게 커다란 관심꺼리였다.

1904년 11월 13일, 일본해군 제독은 전함 대마도호에게 명령하여 독도를 측량하고 거기에 특수기지를 건설할 수 있는지를 조사하게 하였다. 그 측량에서는 거기에 망루를 설치하고 울릉도로 해저전선을 설치할 수 있는지를 조사하였다.(링크를 보시오)

대마도호는 11월 20일 독도에 도착하였고, 그리고 이것은 다케시마/독도에 대한 일본정부에 의한 공식적인 측량이었다. 대마도함의 함장은 독도에 비록 약간 정밀한 문제의 애로는 있지만, 동도에 구조물을 세울 수는 있다고 보고하였다.

왼쪽 지도는 부함장 야마나카 시바기치(山中少佐)가 그린 도면이며, 한국의 다른 일본 군사지도들이다. 이 그림은 이상적인 망루의 위치 그리고 식수의 가능한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지도에는 점선으로 정찰한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독도는 망루와 작은 기지를 건설하는데 적합하다고 결론지었지만, 일본해군은 건설을 6월까지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동해는 겨울과 봄에 매우 거친 기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독도는 적절한 계류장이 부족하였다. 동도의 절벽에 건설자재를 운반하려면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또 다른 건설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된 요인은 러시아의 발틱함대의 진출이었다. 1905년 1월, 일본의 군대는 발틱함대가 대마도 해협을 통과할지 확신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순항이 1905년 초에 함락되자, 러시아의 전함들이 동해(일본해)를 몇 달 내에 통과할 것이란 것은 거의 확실하게 되었다.

1904년~1905년 일본의 러일전쟁 기록에서는 고무라 주타로(小村中太郞)가 독도의 병합에 도움을 주었으며, 일지전문에서 대부분 러시아의 함대의 위치를 보고하고 있다. 1월 초, 고무라 주타로는 발틱함대의 목적지가 Vladivostok이 될 것임을 확신하는 전문을 보냈다. 대마도 해협은 유일한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통로였던 것이다.(위 오른쪽 문서 참고) 따라서, 두 주일 후, 독도병합의 최종결정이 내려지고 일본의 내각은 1905년 1월 28일 독도를 병합한다.

대마도 전투 직후. 일본해군은 독도에 망루건설을 시작한다. 일본의 전함 하시다테(橋立)가 독도로 파견되어 보다 상세한 측량이 완성되었다. 아래 내용은 1905년 6월에 그려진 몇 개의 지도들이다.

위 왼쪽: 하시다테(橋立) 호의 독도 측량지도는 북쪽에서 본 것으로, 동도(東島)는 망루(望樓)에 가장 적합한 이상적인 위치임을 보여주고 있다. 위 중앙: 하시다테(橋立) 호의 항해일지에서 보이는 또 다른 지도는 서쪽 섬(西島) 그리고 동도(東島) 주변의 바위를 역시 표시하고 있다. 위 오른쪽: 독도의 두개 스케치. 하나는 남쪽 에서 본 것이며,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독도의 가파른 산능선을 나타내는 윤곽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역시 군대 망루 그리고 관측소의 가장 좋은 위치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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