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그리고 Marcus -Minamitori-shima(南鳥島)섬 – 일본의 19 세기 섬 “편입”의 비교”
일본의 “불법적인 모험”은 19세기 메이지 일본시대 팽창주의의 대리로 활용되었다.
Marcus 섬에 대한 간단한 배경:
Minamitori-shima (南鳥島) 또는 Marcus 섬은 북서태평양 바다의 고립된 섬으로서 북위 24.18′N, 동경 153.58′E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의 이름으로 뜻은 “남쪽 새들의 섬”이다. 그 섬은 면적이 1.2 kms이다. 그 섬은 일본에 속해 있는 가장 동쪽에 있는 영토로서 일본 도쿄에서 약1,848 km 동남쪽, 또는 일본의 가장 남쪽 섬인 오가사와라 제도의 Iwo 지마에서 동쪽으로 1,267 떨어진 거리에 있는 섬이다. 그리고 도쿄 그리고 Wake 섬 사이에 해협 선위에서 가장 가까운 섬으로, 1,415 km 동남동쪽이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섬은 Mariana제도의 Farallon de Pajaros로서, 이 섬들은 Minamitori Shima의 서남서쪽 1021 km 먼 곳이다.
섬은 1864년 처음으로 명명되었고, 미국 측량함이 1874년 처음으로 측량하였으며, Kiozaemon Saito가 1879년 처음 상륙하였다. 일본은 1898년 7월 24일 공식적으로 이 섬을 편입하는데, 미국의 1889년부터 Guano 섬들에 대한 활동주장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위 왼쪽 이미지: 이 지도는 일본 그리고 그 외부 섬들을 보여준다. Marcus 섬은 아래 지도의 오른쪽 옆에 있다. 위 오른쪽: 항공사진으로 본 Marcus 섬은 공항과 통신소가 보인다. (클릭)
일본의 1898년 Marcus 섬 편입과 관련된 독도~다케시마 분쟁은 어떻게 관련되는가?
한국인들은 일본의 1905년 독도편입이 심각하게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일본은 편입의도를 “공개적이고 공식적 방법으로”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기록에서는, 지방 신문 작은 광고란에, 다만 시마네현의 독도(竹島)편입을 알렸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이 Bonin 제도(오가사와라 제도)에 대한 영유권주장을 결정할 때는 영국과 미국이 그 섬에 개입하기에는 멀지만, 모두에게 여러 번 통지하였다.
일본 외무성의 성명은 리앙쿠르 바위섬(독도) 편입은 Marcus 섬의 편입과는 다르기 때문에 따라서 모두 합법적이라고 말하였다. 이 건에서 일본은 옳은 것 같다. 순수히 합법적 관점에서 일본의 Marcus 섬 편입은 독도와는 비교가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이 독도 – 다케시마 문제의 논쟁에서 일본의 논쟁을 지지하는데 도움이 되는가? 일본의 국가 기록물 보관소에서 오래된 역사적 기록을 연구해보면, 이 페이지 지적에서는 일본의 Marcus 섬 주장과 그리고 어떻게 그들은 독도 – 다케시마와 관계되는지에 관하여 약간의 속임수가 있다.
미국과 일본의 1902년 Marcus 섬 분쟁의 기원
1889년 James Rosehill이라는 함장이 탄 작은 상선이 우연히 Marcus 섬을 발견한다. 그는 그 섬에서 코코넛을 취하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대단히 많은 구아노(새의 분비물)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것을 하와이에서 비료로 팔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함장 Rosehill은 당시 코코넛 나무에 미국 국기를 게양하였다. 거기에서부터 함장 Rosehill은 나무에 병을 매달고, 미국의 이름으로 이섬을 소유한다고 적어두었다. Rosehill의 선원들도 그 사건을 알고 있다는 서명을 하였다.
Rosehill 선장은 그 섬을 편입시키도록 신청서를 밀고나가지 못했으며, 그 사이에 일본이 1898년 Marcus 섬을 오가사와라 열도의 일부라고 주장하였다. 1902년 Rosehill가 최종적Marcus 섬에서의 활동을 시작하려고 할 때, 결과는 외교적으로 미국과 일본 사이의 문제가 되었다. 분쟁은 대부분 두 나라들 간의 군사적 해결을 보이게 되었다. 이 페이지 목적 은 누가 우세한 문서를 가졌는가가 아니라, 일본의 땅 주장이 합법적으로 시행되었는가 하는 것을 상세히 보려는 것이다.
Marcus 섬 그리고 리앙쿠르 바위섬(독도) – 일본의 편입은 공시되지 않았다.
여기서 볼 수 있는 두개의 일본 뉴스기사는 1898년 일본이 Marcus 섬을 획득했을 때, 일본이 공시한 것이고, 그 옆에는 일본이 1905년 독도를 편입하였던 신문기사이다. 여러분은 그것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수있다.
다음의 “선언”은 영토 주장에 필수적인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것으로 분류하기에 충분한가?
왼쪽 두 이미지들은 일본의 Marcus 섬(Minamitori-shima) 편입 “공고” 신문기사이며, 오른쪽 이미지는 시마네현의 뉴스기사로서 작은 이름없는 바위를 다케시마 (독도)라고 명명하고 일본의 일부로 한다는 기사이다.(클릭)
일본이 Marcus 섬에 대한 주장을 한 4 년 후, 함장 Rosehill 그리고 미국 정부도 역시 Marcus 섬을 편입하려고 시도하였다. 명백히 미국 정부는 일본의 몇년 전 Marcus 섬 편입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이것은 일본의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발표”가 부족한 것이었다. 일본의 Marcus 섬의 주장에 관한 부적합한 공시는 군사적 분쟁을 초래하는 국가들 간의 외교라인을 초래하였다.
일본의 외무성, Baron Jutaro Komura(오른쪽)은 모든 Marcus 섬 분쟁, 그리고 다케시마 편입에 관여하였다. 이것을 알면서, 왜 일본외무성 관리들은 1905년 또 다른 국제분쟁을 방지하기 위하여 태도변화를 하지 않았던가? 왜 일본은 Marcus 섬처럼 다케시마의 “공식적 발표”를 몰래 하였는가?
Komura는 “공개적이고 공식적” 지방신문광고를 할 경우, 이해관련 당사국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이 때문에 일본은 독도 편입을 의도적으로 널리 알리지 않았다. 이 페이지는 다케시마의 편입의 의문스런 합법성에 대하여 연구를 더 하고자 한다.(링크)
위의 사진들은 일본의 Marcus 섬 편입에 대한 미국의 상세한 반응을 나타낸 신문기사이다. 분쟁은 일본이 적절한 공식적인 편입 공시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이상하게도, 리앙쿠르 바위섬(독도) (다케시마)도 그 후 3년 뒤에 같은 방식으로 편입된다.(클릭)
Marcus 섬 그리고 독도 – 다케시마 일본의 영토 쟁취를 위한 불법적 활동
나가이 요사부로 그리고 Mijutane, 일본 외무성은 19 세기 땅 주장에서 은밀한 방식을 취하였다.
In 1905년 일본 시민 나가이 요사부로는 리앙쿠르 바위섬(독도) (다케시마) 임대를 신청하고, 일본은 이를 근거로 독도의 시마네현 편입을 하였다. Jutaro Komura은 Nakai의 신청 과정에서 개입한 3명 정치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나가이 요사부로는 누구인가? 나가이 요사부로는 일본의 어부로서 불법적으로 한국의 울릉도를 침입한 사람이다. 그의 불법적 조선 영토 도해에서 Nakai는 그의 불법 울릉도 기지에서 리앙쿠르 바위섬(독도)의 강치사냥을 간청하였다.(링크를 보시오)
1898년, 일본인 Mijutane는 Marcus 섬을 임대하려고 신청하였고, 따라서 그것을 도쿄 지방 정부 관할로 두었다. Mijutane는 누구인가? 1800년대 말, 일본의 민간인들은 Yokahama에 기지를 두고 모든 북 태평양의 철새들의 대량학살에 관여하였다. 이들은 미국의 Hawaii열도, Midway 섬, Laskiansky 섬 그리고 태평양의 다른 외부 섬들에서 해적행위를 감행하였다. 수십만 마리의 바다 새들이 살육되었고 그 깃털과 시체들은 썩어졌다. 이 불법 수렵은 Kametoki & Mijutane가 Yokahama에서 기지를 두고 행한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이들 밀렵자들은 물론 앞에서 말한 밀렵선원 Mijutane가 1898년 Marcus 섬에 대한 일본의 주장을 가져오게 된다. (아래 원본기록을 보시오)
이상하게도, 나가이 요사부로의 일기에서는 그가 역시 일본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오가사와라 섬(위 지도) 지역에도 개입되었다.
일본의 국가 기록보관소 Minamitori-shima (南鳥島) 또는 “남쪽 새들의 섬”(더 큰 그림을 보려면 클릭하시오)이라는 이름의 Marcus 섬 편입 기록문서들
1902년 Marcus 섬의 불하 과정에서 일본 외무성 관리들은 문서의 증거로 바다 새 사냥꾼들의 활동을 인용하였다. 다음은 Komura Jutaro가 1902년 Marcus 섬 분쟁에서 보낸 편지 내용이다. Komura는 말하기를, “…섬(Marcus)은 그 섬에서 새 사냥과 어업에 종사하던 Mijutane라는 사람이 그 섬을 임대해달라는 내용에 따라 임대해준 것이다…” Komura 역시 Marcus 섬에 일본인들이 20명 가량 거주하고 있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위 왼쪽 두 이미지들은 일본외무성 관리의 Marcus 섬 위에 있는 위치이다. 그들의 주장에서 그 섬에 일본 국적자들이 영구히 정착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럽다. 위 오른쪽은 약간 관련된 신문 기사이다.(이미지 클릭)
1903년 중반, 태평양에서 이들 일본 밀렵자들에 관한 쇼킹한 진실이 밝혀지는데, 최종적으로 국가 Audubon Society와 미국 정부에게 알려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Mijutane의 회사에 의해서 심각한 환경파괴가 이루어지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역시 명확한 것은 이들 범죄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영토경계선을 불법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미국 정부가 일본의 광폭스런 새 밀렵자들로 인한 섬 환경의 파괴 문제로 일본외무성과 대립되었을 때, 일본 Komura Jutaro의 회신은 약간 놀라운 것이었다. Komura는 promised to문제 지시 to 모든 일본의 함장들에게 미국영토에서 새를 잡지 dskg도록 지시를 내렸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사람들이 대체로 불법 모험자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금지령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Komura 역시 이 살륙은 Yokohama의 Mijutane에 의해서 저질러 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링크 1) (링크2)
위 이미지들: 미국 외무부 문서기록. 미국의 외부 섬들에서 대량적 바다새 사냥에 대해 분노하는 미국의 자연주의자들. Komura는 나중에 이들 사냥꾼들이 Marcus 섬 땅 문서에 기초를 두고 활동을 하는 치외법적 행동이라고 하였다. (클릭)
다시 말하면, Marcus 섬 (다케시마~독도처럼)에 대한 일본의 문서에서 섬의 획득은 일본의 민간인들의 이웃나라에 대한 불법적인 해양자원 획득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 상황은 문자 그대로 수백 명의 일본의 불법체류자들이 울릉도를 점거하고, 이를 다스리기 위하여 일본 경찰이 울릉도에 주둔하는 상황의 딜렘마를 반영한다.
Marcus 섬 그리고 리앙쿠르 바위섬(독도) (독도) – 일본의 정착과 점령의 거짓 주장
1905년 1월 28일, 시마네현의 내각은 리앙쿠르 바위섬(독도) (다케시마)의 편입을 발표한다. 발표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이 건을 조사하였고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사실로서 나가이 요사부로가 메이지 36년(1903) 이후 그 섬으로 이주하였고, 그리고 거기서 어업을 행하였다는 명확한 문서들을 근거로, 국제법에 따라 그 섬을 편입한다.” 현실적으로 나가이 요사부로는 다케시마에 정착하지 않았고, 불법적으로 그의 업무 한국의 울릉도에서 그의 일을 하였다. (링크)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일본이 Marcus 섬을 편입하였을 때, 그 섬은 20명의 일본인들이 계속하여 영구적으로 거주하였다고 주장하였다.(링크) 일본인들은 실제로 Marcus 섬에 Komura Jutaro가 말한 것처럼 실제로 그 섬에 정착하였는가? 20세기 몇 가지 기록은 진실을 나타낸다.
첫째 기록은 함장 Rosehill 자신이 손으로 쓴 기록이다. 그는 Marcus 섬에서 일본인들은 거주자가 아니라고 하였다. Rosehill이 기록하기를 “…그들은 는 일본의 무역업자들이며, 새와 고기를 잡는 일에 종사하였고, 숫자는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여 약 45명 정도였다. 우리 관리들이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데리고 갈 선박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우리의 빛을 보았을 때, 그들은 이 배가 그들의 선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링크) 이 사람들은 물론 Yokahama의 Mijutane에 의해서 채용된 같은 선원들로 기타 태평양에서 새를 사냥하러 온 민간인들이며, Marcus 섬의 영구적인 거주자들이 아니었다.
위 이미지들. 함장 Rosehill은 Marcus 섬 항해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Rosehill은 말하기를일본인들은 섬의 거주자가 아니라, 새 사냥꾼과 어부들이다. 위 오른쪽 이미지는 일본이 인정한 Marcus 섬의 거주자는 정착민이 아니라 유랑민이었다는 기록의 신문기사이다.
19 세기 일본의 불법 Marcus 섬 그리고 독도 불법 영토편입-
우리는 19 세기 일본의 땅 획득을 자세히 보면, 분명한 패턴이 나타난다. 원래 일본의 영토획득은 이웃 나라 영토를 무시하는 뻔뻔스런 행동을 하는 자들의 모험으로 침략이 시작된다. 거기에서부터 흔히 대량 이주자들이 생겨나고 원주민들을 압도하게 된다. 이것은 원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만들거나, 한국의 울릉도의 경우처럼 그 숫자가 점차 넘게 된다.
이들의 범죄는 일본정부의 윈-윈 상황으로 나가게 된다. 그들은 도해자들의 활동을 이용하여 편입 영토편입의 수단으로 그리고 동시에 일본정부는 범법자들에 대해서 일본정부가 수단을 쓸 수가 없다는 구실로 “그들이 손을 씻게 된다” 이것은 명확하게 두 가지 다른 외교부 기록에서 밝혀지는 이중 플레이의 교묘한 수단이다. 개인 땅 문서를 사용하여 “무법적인 모험자들”은 일본의 땅 주장 실현의 합법성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 한다.
그것이 혹카이도의 Ainu Moshiri의 이주라든지, 류큐의 정치가들의 암살, 또는 일본의 외부 섬들(예를 들면, 울릉도~다케시마)의 침탈에서 나타난 것이든, 그 결과는 같다. 일본황국 신하들은 지방과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에서 병사, 경찰, 땅주인, 공무원, 이민 농사꾼과 어부들로, 무역업자로, 그리고 기업의 공격적인 사업가로 활약하게 된다.(나가이 요사부로 그리고 Mijutane)
아마도 식미지 시대의 땅의 획득에 대한 주장은 합법적인 모습을 가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일본의 외무성은 매우 잘못된 지침서를 만든 정치적 상황을 이용하여, 1905년에 한국/아시아에서 전제로 한 것처럼, 다케시마에 대한 주장을 다시 되돌아갈 것을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