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 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

한국인 연구자는 독도가 역사적으로 일본의 오키지방의 영토가 아님을 증명하는 문서를 밝혀냈다.
한국인 연구자의 문서는 역사적으로 독도가 일본의 오키 지역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2009년 11월 7일 한국의 신문 조선일보는 한국인 연구자 유미림 여사가 중요한 역사적으로 독도 – 다케시마 분쟁에 관한 중요한 문서를 발굴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기록에서는 일본의 다케시마 로비운동을 밝히는 자료를 보여준다. 또한 거기에는 일본이 방어적인 태도로 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왼쪽으로 신문에서는 유선생이 역사적으로 독도 – 다케시마 분쟁과 관련한 중요한 다른 문서들도 보여준다.

“유선생 발견한 것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새로이 밝혀진 기록은 오키 신문 1905년 3월 15일자이다. 이 문서에서 기록은 일본정부가 독도를 병합하고, 그 섬을 오키 군의 재판관할로 독도를 병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록을 통하여, 우리는 오키 섬 관계 거주자들은 울릉도와 독도를 팽창주의 메이지 일본이 독도를 강탈하기 전에 오키 섬 거주자들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아래는 친일-일본의, 다케시마 웹사이트를 번역한 것이다.

1905년에, 독도 그리고 울릉도는 일본 외무성이 주장하던 것처럼 역사적으로 오키 섬주민들은 일본영토라고 생각했을까?
1905년 3월 15일자 오키 신문 이미지, 일본의 독도 합병 공고

위: 1905년 3월 15일자 오키 신문 이미지. 일본의 독도 합병선언 사설 기록에서, 독도 “획득”은 오키구의 “영토확장”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섬들이 1904 –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이 섬들을 점령하기 전에는 오키 지역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일본한자의 번역. 1905년 3월 15일 오키 신문.
隠岐新報 明治三十八年三月十五日発行 第十六号
社説
隠岐国境土の膨張

隠岐の西北八十五浬を距る海洋に存在する島嶼を竹島と命名し隠岐の新領土として隠岐島司の管轄に属せしめられぬ、吾人豈太白を浮べて祝せざるを得んや、抑も竹島の地たる姉妹二つの島嶼、数多の小島嶼以て點々包囲せられ、其面積の如き未だ詳にせずと雖も、棲居敢て凌ぎ得ざるにあらずといふ、而して陸産としては殆んど利するものなきも、海産に於ては海獣其他漁利鮮なからずと聞く、由來我島民中夙に同島に航して獲たる所のもの少なからず、事実上隠岐の領土に属し居りしは既に久し、然るに公然之を認められざりしは遺憾の感ありしに、今や公認の令に接するを得たる上は我島民たるもの大に期する所なかるべからず、然れども同島固と狭小なり、産物の濫採は永久の利を得る所以にあらざれば一時の利を競ふて無限の利を顧みざるが如きことなきを要す、當局者たる者亦大に此點に留意する所なかるべからず、兎に角隠岐の地籍に新領の上るは何れの町村の所属となるにせよ、確かに隠岐の一大幸福たり、吾人は快感禁じ難く玆に一言を陳じて隠岐境土の膨張を祝す、 (弱魚)

오키신문, 1905년 3월 15일자 16면 사설
오키 국의 영토확장

“… 오키 북서쪽 85 해리에 위치한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섬은 오키섬의 지사의 판결로 새로운 영토로 한다. 나는 비너스가 유리에 비치고 그것을 한 입에 삼킨 것 같은 기쁨을 감출 수가 없이 축하를 하는 바이다. 말하지만, 다케시마라고 하는 두 개의 섬은 수많은 작은 섬으로 둘러싸여있다. 이 지역에 대한 면적에 대해 상세히 말하자면 그 땅에 텐트 치고 살 정도밖에 안된다고 말하고 섬의 생산물도 거의 없다고 말하지만, 해산물로 말하자면 해양생물 등이 풍부한 곳으로 오래전부터 오키의 사실에는 적지 않게 거기에 항해를 하였고, 따라서 사실상 오키의 영토였다. 사실상 오키의 영토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공식인정을 받았으니 섬주민들의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섬은 처음부터 좁고 따라서 단기적인 이익으로 경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좁은 곳에서 무한한 이익을 취하려 하다보면 영구적인 이익을 취하지 못한다. 당국과 관련자들은 이 관점을 잘 알아야 한다. 어찌되었던 이 섬이 어느 마을 어느 섬에 속하든 관계없이 새로운 영토대장에 동참하게 되었음은 커다란 축복이다. 오키의 영토확장을 이 상황에서 논하면서 나는 기쁨을 가눌 수 없다. (생략)…”

오키 신문의 3월 15일자 오키 지역의 확장(膨張) 선언 분석
몇 가지 중요한 지적을 이 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의 독도 다케시마 주장에 대한 잘못을 지적한다. 이 자료를 상세히 검토해 보자.
많은 지도와 관련된 많은 자료 그리고 문서는 일본의 독도 다케시마 명명에 대한 오랜 잘못을 지적한다. 이 기록은 또한 이 문제를 원점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여기서 독도를 “새로운 일본의 영토”라고 하였으며 사설문서도 오키 섬의 독도와의 역사적 관계로 기술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울릉도도 마찬가지다) 사설에서는 독도를 “사실상” 오키구의 영토라고 하였지 오키의 일부 또는 일본의 일부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몇 몇 오키 섬주민들은 과거의 불법적 은밀한 도해에서 잘못된 섬의 명칭을 바꾼 감각을 가졌을 것으로 이해한다. 오키 섬은 일본 본토로부터도 고립되어 막부의 엄격한 울릉도 – 독도 지역 도해금지를 지킬 수가 없었을 것이다. 1837년 타케시마 竹島 (울릉도) 사건
이 단순한 두 한자의 사용은 일본의 현재 독도에 대한 주장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고 있다. 글자 “팽창:膨張”은 분명히 “확장”으로 해석되는 것이지 합병 또는 고유영토의 확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의 1905년 편입이 필연적으로 땅을 가로채는 것임을 볼 수 있다. 우리는 1905년 이전에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일본의 1905년 불법적 독도 편입

비록 오키구는 이 “확장”으로 이득을 얻겠지만, 오키 섬주민들의 울릉도 독도 지역 불법 도해는 합병의 근본이 아니다. 메이지 일본의 독도 합병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 것이며, 일본 제국해군의 고위관리 肝付兼行(Kimotsuki Kenko) (일본의 다케시마 X-Files II – 독도와 일본제국 해군)가 일본제국 小村中太郞(Komura Jutaro)의 팽창주의 강경노선을 유지한 것에서 유래하며, 그 후 현 공무원, 최종적으로는 구의 공무원이 시행한 것이다. 당연히 정부기관들 사이에서 일본의 독도강탈을 안 것은 오키 지역이 가장 늦다.

최종 노트에서, 나는 웹마스터로서 대단한 가치 있는 역사기록을 제시한 유선생에게 축하를 보낸다. 나아가, 우리 Dokdo-takeshima.com 은 원본을 볼 수 있도록 자료를 보내주신 유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유선생 건투하시고 행복하십시오!